OO이 엄마
내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 중에 본명이 아니라 OO이 엄마로 저장된 사람이 있다. 여자는 애를 놓으면 자기 존재가 뒤로 사라지는 지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를 부를 때, 큰 딸인 누나 이름을 곳잘 부르곤 하셨다.
재활의학과 의사로 살다보면, 환자보다도 가족들과 이야기를 더욱 많이 하게 된다. 뇌를 다친 사람들은 인지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화가 수월하지 않은 점도 있고 , 예후나 향후 치료방침에 대한 설명을 family confernece라는 이름으로 가족 면담을 하기 때문이다.
엄마에 말에 의하면, 녀석은 17세가 되던 생일날, 몰래 모은 용돈으로 산 새 오토바이를 타다가 뇌를 크게 다쳤다고 한다. 응급실에서 만난 신경외과의사는 그녀에게 식물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엄마의 정성스런 간호와 여러차례 걸친 뇌수술후에 녀석은 놀라보게 좋아졌고, 우리 병원에 올 때쯤에는 걷기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보통 오른쪽 뇌를 다치면 말을 하지만 말의 고저가 사라지는 "Aprosoidia"라는 현상이 생기는 데, 여기서 A는 없다는 뜻이고, "Prosody"는 음정이라는 뜻인데, 녀석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했다. 녀석은 빈혈이 있어 얼굴은 창백했고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다치고 난뒤 시력이 떨어져 초점이 흐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우리 병원에 입원후 녀석의 운동능력은 놀라보게 좋아져서, 나중에는 뜀뛰기까지 가능할 정도로 호전되었으나 문제는 기억력이었다. 다치기전의 예전 기억은 곧잘 해냈으나, 새로운 것은 학습이 잘 되지 않았다. 회진때 내가 녀석에게 한 것은 내이름 기억하기였다.
"OO아 내이름 뭐꼬?"
"네..................... ?"
몇 번을 가르쳐 주어도 녀석은 내이름을 기억을 하지 못햇지만 퇴원 무렵에는 내이름을 느리게 기억을 해내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일을 혼자서는 할 수 없었고, 어머니가 지시해야지만 겨우 실행이 가능하였다. 가령 예를 들어 밥을 먹을 때도 엄마가 밥을 먹어야지라고 이야기 해야지만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두달이 지나, 퇴원시간이 다가오자, 엄마는 다시 다른 재활병원에 갈 것인지, 아니면 집으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 상의를 했다.
" 선생님, 얘를 어디에다 내 놓을지 모르겠어요."
" 엄마, 엄마가 애를 놓았어요? 명품백을 낳았어요? OO이가 아파도 엄마 아들이고, 건강해도 엄마 아들입니다.데리고 다닐려고 낳은 애가 아닙니다. 엄마, 제일 처음에 응급실에 갔을 때, 의사가 뭐라고 했나요?"
"식물인간 된다고 했어요"
"그 때는 의사 붙잡고 살려만 달라고 했지요?"
"네"
"살려 놓으니까, 다음에는 사람을 알아보았으면 좋겠고, 누워있는 애가 앉았으면 좋겠고, 앉은다음에는 서있으면 좋겠고, 서있으니깐, 걸었으면 좋겠고, 걸어다니니깐 뛰어 다니면 좋겠지요?"
"네"
"욕심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 되는 것은 되는 것이고, 않되는 것은 않되는 것입니다. 불행을 만들거나 행복을 만드는 것은 남이 아니라, 모두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어머니, 퇴원후 외래에서 오시면 내가 병원밖에서 사회에서 장애인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같이 상의하도록 하지요."
어머니 욕심에는 좀더 인지기능이 호전이 되면 퇴원하는 것이 좋지않을까 생각하셨지만, 나는 이정도면 많이 좋아진 것이니 집으로 퇴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설명했다.
퇴원시 어머니는 감사의 뜻을 전하고, 한달에 한 번씩 외래에서 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머니와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자주하곤 했다.
어느 겨울 날 회의로 서울역에 가는 중이었다. 그 때 어머니가 울먹이면서 전화가 왔다.
" 선생님. 제가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정말 죄송합니다.선생님. OO이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걷지도 못합니다."
그리고서는 어머니는 강남 모병원에서 줄기 세포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3000만원은 족히 드는 비싼 치료였지만, 효과가 있기는 커녕 오히려 부작용만 생긴 것이다. OO이는 뇌수술을 하면서 뇌에서 배로 관을 설치하였다. 뇌압이 올라가면 보통 전두엽이 압박받기 때문에,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원인은 시술 전후로 MRI를 촬영한 것이었다. 보통 뇌안의 관은 정밀한 밸브로 조정되는데, 이것이 금속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MRI를 찍으면, 이 밸브가 풀어져 버리거나 이상이 생겨서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머니, 어머니는 OO이에게 잘해준다고 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OO이를 동물 실험 대상으로 한 것 밖에 않됩니다. 어머니가 욕심으로 오히려 애를 망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전화상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다시 입원해서 그 밸브를 조정하기로 했다. 밸브를 조정하고 난 뒤에서야 다시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했고 걷는 곳도 좋아졌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어머니와는 더욱 관계가 돈독해졌다. 세상 살다 보면 내 뜻되로 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 끌려 가면 않되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애는 애고 어머니는 어머니이니깐, 어머니가 원래 하시던 재미있는 일을 하시라고 했다. 어머니는 원래 화가였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도 하였다. 어느날 내가 카카오 스토리를 하고 있는데, 그 때 이XX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글을 남기는 것이었다. 나는 항상 OO이 엄마라고 불렀기 때문에 어머니의 이름을 몰랐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지? 하면서 그녀의 프로필을 살펴보았다. OO이 엄마였다.
여자에서 엄마로, 그러나 엄마는 다시 그녀가 되었다.
세상에서 "나로 산다는 것" 그러나 "엄마로 산다는 것"과 경계는 어디인가? 나는 그녀에게 인생은 자식이라도 누구에게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삶은 자기가 이끌어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나는 그녀를 엄마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누구를 위해서 산다. 누구를 위한다는 것은 지금 보면 거짓이 분명하다. 기업이 고객을 위한다는 것이나, 정치인이 국민을 위한다고 하는 것이나, 이는 명분에 불과한 것이다. 자기가 배가 아파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누구를 위해서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 체면이나 내 입장으로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잘 살아야지, 누구에게도 잘 할 수 있는 법. 그녀도 OO이의 엄마에서 그녀로 되자, 조금은 안정을 찾은 듯 하다.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 조건에 맞추어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슴아프겠지만, 외래에서 보는 그녀는 이전보다는 훨씬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