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棟/일기

Band of brothers

Re-Happy-Doc 2013. 3. 6. 07:07

남자들에게 친구란 배우자나 애인과는 좀 더 다른 것 같다. 사주로 풀어내는 언어로 보자면 재산이라고 해야 하나? 어쨋든 인생 대소사에서 남자에게서는 친구는 소중하다. 그것은 남자라면 경험하는,  나이가 들면 상갓집에 가거나 상주가 되는데, 그럴때면 친구들이 와서 일 도와주고 상여도 매어주는 ...... 그래서 남자들은 고등학교 동문회나 대학교 동문회 혹은 의사라면 의국 동문회가 중요하다. 


나에게도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 고등학교시절, 지금은 직업이 달라 만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나의 존재감을 믿어주고 이해해주는 친구들....... 내가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내 입장에서 이해해주고 믿어주는 친구도 있고 대학교 와서는 지금껏 평생 친구인 OO이가 있었고, 최근에는 그 녀석 때문에 진가를 알게된 XX도 있다. 


OO이는 의과대학생때 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이다. 아버지는 한전에서 지사장 하시고, 어머니도 수필을 좋아하는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항상 고민이 많았는 지, 여기저기 술자리가 있으면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머리가 워낙 명석해 공부를 남들처럼 열심히 하지 않아도 재시험에는 빼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받는 녀석이었다. 

그 녀석과는 이검이라는 검도 동아리를 통해서 친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운동권이어서 일반 동아리는 들지 않았는데, 그 때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입주과외를 했다. 12시까지 과외하고 3시까지 내공부하고 새벽에 씻고 나올려면 운동을 해야 했는데, 그래서 시작한 운동이 검도였다. 

새벽에 6시까지 자전거 타고 7시까지 검도하면 8시까지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잠이 사라져 정신이 맑은 상태로 수업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검도 동아리는 매주 일요일 3시에 모여 같이 3시간 운동하고 난 뒤 저녁에 같이 짜장면을 먹는 것으로 끝을 냈었다. 

나는 그 때만 해도 자칭 혁명적사회주의자(?) 여서 그 친구에게 운동이야기도 많이 했던 것 같다. 


하루는 그와 내가 그 때 머물고 있던 운동단체 사무실에서 추운 겨울 술을 진탕 먹던중 이런 저런 운동권 이야기를 하다가 녀석이 하는 말이


"형은 배부른 자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냐? 형이 말하는 세상이 왔을 때 과연 모든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수 많은 이야기 중에 갑자기 들은 충격이었다. 그 전에도 녀석이 술을 많이 먹고 난뒤 자살하려고 해서, 내가 옥상 난간 위에서 석을 잡는다고 고생했던 기억이 났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가 가정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 형은 집이 힘들고 어렵지만, 형과 가족들 사이는 좋지 않냐고 반문하였다. 

 

모든 사람의 고민은 평등하다. 과연 당시 내가 꿈꾸던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사회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까?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어쨋든 그 날 그친구와 술자리 이후로 너무나 친해져 약 1년은 녀석의 집에서 생활했던 것같다. 어머니와 아버님도 나의 사정을 이해해주시고 받아 들여 주셔서 이제는 친부모님처럼 지내고 있다.

또 한녀석은 최근에 친해진 친구이다. 위에서 말한 친구가 여기 저기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귀어서 나중에 서울에 취직자리 때문에 올라와서 서울에서 자주 만나게 된 친구였다.

 

의과대학시절에도 OO이가 "형, XX형도 형처럼 많이 힘들다. 형이랑 이야기 좀 해봐라" 라고 이야기 했지만, 원래 보았던 그 녀석의 스타일때문에 영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제일 처음 입학해서 그를 보았을 때, 염색을 하고 귀고리를 하고, 당시 X세대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친구였고. 춤추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여서, 그닥 가깝게 지네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가 부잣집 아들인줄 알았다.

그는 나보다 학번은 위였지만 어떻게 해서 예과에서 유급을 당해 우리와는 본과 수업을 같이 들었다. 본과에서 본 그의 목소리는 "Vocal dystonia"라는 희귀병에 걸려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dystonia는 근이긴장증이라는 병인데, 주로 기저핵의 이상으로 생긴다. 손에 생기면 witer's cramp라는 것이고, 목이나, 눈에도 생길 수 있으며, 최근에 나는 발가락에도 생긴 사람을 보았다. 어쨋든 그는 6개월에 한 번씩 서울로 올라가서 botox 주사를 받았고, 그러면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는 데, 시간이 지나면 옆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둔탁한 목소리가 나왔다.

 

의과대학 졸업하고 나는 서울에 오고, 그는 대구에서  목소리 때문에 임상과를 하지 못했던 그는 마취과를 수련 받았다. 나중에 취직때문에 서울에 와서, 그는 나와, OO이 이렇게 세명이서 자주 만나서 술도 먹고 부부모임도 가지기도 했다.

 

평소 그는 자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던 과묵한 성격이었다. 아내와 예쁜 딸아이와 함께 서울에서 여기저기 놀러다니는 것을 즐기는 그는, 서울생활에서 지쳐 제주도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를 보내는 마지막 술자리를 가지고, 그와 함께 택시로 돌아오면서, 그간 있었던 그의 이야기를 조금씩 토해내었다.

 

" 응~~~. 지금 나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매달 백만원씩 보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했고 둘다 다 따로 바람이 나서,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살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아버지하고는 연락이 되질 않는데, 아버지가 기초수급자로 있다가 내가 전문의가 되자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와서 어쩔수 없이 돈을 부친다. 그리고 애들 키우고.......집사람 옷 사주고........ 나는 그렇게 바라는 것 없다. 우리 딸자식 구김없이 잘 자랐으면, 좋겠다. ."

 

이번에 강원도에 같이 여행가서 서로 이야기 하다가 또 조금씩 이야기를 더 했다.

 

"어느날 전문의가 되었는데, 그 때 동사무소 직원이 연락이 와서 이제까지 아버지가 받은 수급자 금액을 환수를 해야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공무원에게 사정 사정했서 막았는 데........ 명절때도 아버지하고 연락도 하지 않고 찾아가지 않지만........ 뭐 어쩔 수 있나?"

 

늦게 만난 진중한 친구였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아픔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에게는 헌신적인 그런 사내였다.

 

"내가, 목이 이래가 과외나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나? 학생때 집사람을 만나서 그 처갓집에서 내 학비를 대어 주었지....... "

 

사람은 모두다 자기만의 아픔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그 아픔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힘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절망하면서 불평불만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사주에서 하는 이야기-운칠기삼, 운이 7이고 기가 3이다. 이말은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우리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못하듯 우리의 운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배우자를 만나거나 자식을 만나거나 그것이 인연이라 불리우던 운으로 불리우던, 우리의 노력과 의지로 되지 않는다. 그게 운이다.상식적으로 부자집 아들은 아들도 부유하게 되고, 가난한 이의 자식은 가난하게 살아갈 확률이 높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자기의 운을 탓하며 나머지 자신의 의지나 선택인 3을 무시하지만, 현명한 사람이고 진중한 사람이라면 그 나머지 3을 가지고  7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그것이 바로 자기 의사 결정권인 것이다. 

 

 주위에 친구나 멘토가 있다면, 자기 의사 결정에 있어 바른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되어 있다. 사람은 자기의 잘못은 자기가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 모습이나 내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친구가 있다면, 삶이라는 장기판에서 훈수꾼을 하나 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남자에게는 친구가 소중하다. 그 친구들이 마시는 소주는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의 회환과 고통 그것을 이겨내는 힘- 그것이 역설적으로 쓴 소주가  달콤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