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근무하다보면, 환자 보호자들이 심심치 않게 촌지를 보내올 때가 있다. 대부분의 환자 보호자들이 밤늦게 일하는 전공의들 식사나 한 번 하라고 넌지시 던저 주곤 하는데, 말 그대로 짧은 성의를 보여주시는 분들도 있고, 반면에 후일이나 댓가를 고집하면서 주는 뇌물성 촌지도 있다.
보통 이것들을 감별하기는 어려운데, 퇴원하면서 주는 촌지나, 떡을 비롯하여 먹는 것으로 주시는 분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지만, 입원 중간에 주는 촌지는 후자일 가능성이 있어, 될 수 있으면 받지 않는다. 왜냐면 그것은 촌지가 아니라 댓가를 바라는 것이기에, 받는 쪽의 내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여든 살의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편마비가 오셨는데, 실어증과 함께 무시 현상이 동반된 할머니였다. 보통 언어는 좌측 반구가 지배하고, 공간 감각은 우측 언어가 지배하는데, 할머니는 이상하게도 좌측 뇌가 손상을 입었는데, 두가지 증상이 모두 같이 나타났다.
하루는 허름하게 옷을 입으신 어르신이 찾아와서는 입원한 환자의 남편이라고 하시고는, 다리가 저리고 아프다고 하시면서 외래에 방문했다.. 보통 나이가 든 어르신 부부의 경우 환자의 배우자도 환자일 경우가 많다.
나는 " 어르신, 어르신이 건강하셔야, 환자분을 잘 보십니다." 라고 이학적 검사하고 이것 저것 검사를 하자고 했다.
그러자 어르신은 허리춤에서 꼬깃 꼬깃하게 봉투를 내어 오시더니만, "선생님. 우리 집사람 잘 좀 부탁합니다."
그래서 얼른 나는 "어르신,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가계시면 됩니다. 저는 마음만 받겠습니다." 라고 곱게 그 돈봉투를 돌려드렸다. 병원에 입원한 보호자의 마음은 오죽하랴. 대부분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절대 약자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는 좀 더 잘 봐주고 하는 것은 윤리적이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우며 촌지를 받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고 난 뒤 며칠 뒤 다시 남편분이 오셔서 진료를 받으시더니만, 이제는 다시 그 봉투를 꺼내시는 것이었다. " 선생님. 이것 주머니에 계속 넣고 다니다 이제 모두 헤어졌습니다. 제발 좀 받아 주십시요."
그러나, 나는 그 돈을 받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 돈봉투가 내가 다른 진료실에 가자 책상위에 놓여져 있었다. 얼마나 들고 있었는지 할아버지 말 마다나 봉투는 다 헤어져서 돈이 삐쳐 나왔다.
진료를 마치고 난 뒤, 나는 그 돈봉투를 들고 생각에 잠겼다. 돈도 돈이거니와 그 허름한 옷을 입은 할아버지, 한쪽눈은 마비가 되어 눈꺼풀이 쳐저 행색이 말도 아닌 할아버지에게서 의사랍시고 돈을 받고 있는 나는, 도저히 촌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 돈을 들고 어머니를 간병을 하고 있는 딸에게 찾아갔다. 아버지에게 이렇게 촌지를 주고 가셨고, 이것은 내가 받았다고 치고, 어머니 아버지 보기도 힘드실 텐데, 몰래 아버님께 드리던지 아니면 따님이 쓰시라고 전했다.
그러자 딸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러면 퇴원하면서 드리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런 저런 상황을 말하면서, 받지 않겠다고 하자 딸이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 아버님은 개성분이십니다. 개성사람이라는 것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오셨던 분입니다. 항상 검소하게 생활하셨고 6.25이후 고양에 정착해서 이제까지 저희들을 낳으시고 키워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병원비도 이제까지 다 건물 임대료로 내오시고 계십니다. 사실 저도 어머니가 이래서 힘이 듦니다. 저도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는데, 엄마돌본다고 이렇게 병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지금도 그렇고, 이전에도 엄마가 쓰러질 때, 그렇게 지극 정성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옛날 분이셔서 그런지, 의사 선생님이라고 하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지난번 세브란스에서 수술할 때도, 그러셨고, 지금도 그러시는 거에요. 저도 사실 받는 분이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 같아서, 드리지 말자고 했습니다만, 아버님이 워낙 막무가내십니다. 당신은 그렇게 해야지 마음이 편하신 가봐요. 아버님은 평생 검소하게 지내시면서 돈을 모아서, 우리에게 조금씩 물려주시긴 하셨지만, 엄마가 저렇게 된 다음에는 다 필요없으니, 엄마가 살아나서 앉아 있을 때까지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좋은 뜻에서 받아주세요."
허름한 잠바에 땟국이 자국한 바지를 입고 오시고 머리는 산발되어, 어디 논두렁에서 잡초를 뽑다 오신 모양인 그 할아버지와 오른쪽은 있는지도 모르고 왼쪽만 있어 빙그레 웃기만 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나 아름답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날 짧은 뜻에서의 촌지가 아니라, 내가 그 두 노부부의 넉넉한 사랑을 받았다. 단지 나에게 의사라는 존재만으로 이런 큰 복이 있다니, 병원 밖에서는 그렇게도 시끄러운 일이 많이 있어도 재활병동에는 애절한 그리움이 넘쳐난다. 흔히들 사랑이라고 하면 유행가 가사처럼 가슴 시리고 짜릿하거나 아이돌의 노래처럼 즐거움이 넘쳐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초겨울에 감나무 꼭대기 끝에서 늘어질 때로 늘어진 까치를 기다리는 홍시처럼 진득하게 한 평생 우려나는 그런 그들의 사랑이 더욱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한 평생 그 힘든 세상의 파도를 헤치면서 살아왔던 그들의 사랑은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만, 존재자체가 희망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