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2 어머님의 뇌졸중 이후로 가족간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어느 스님이 이야기 했다지요. 가훈을 적어 달라니깐 " 할아버지가 죽고, 아버지가 죽고, 아들이 죽는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가훈을 요청한 사람이 스님에게 왜 죽는 이야기를 하냐고 하자, 그럼 "아들이 죽고 아버지가 죽고, 할아버지가 죽을까?" 라고 반문을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자연스런 법칙이 가장 좋다는 것이지요.
대걔 보면, 집안에 아버지, 손자입장에서는 할아버지가 될 수 있겠네요. 할아버지가 뇌졸중이든 암이든 먼저 쓰러지게 됩니다. 그럼 주로 간병을 아내가 하지요. 물론 아내도 연로하면 같이 아플 수가 있습니다. 두 부모가 다 아픈 경우는 자식에게는 참 큰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흔하지가 않습니다.
남편이 병이 걸리거나 뇌졸중이 걸리고 난 뒤 아내가 병이 나는 것은 자연스런 법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에게는 모성애가 있어, 쓰러진 남편을 잘 돌봐 줄 수가 있습니다. 집안에 아버지가 쓰러지면 저는 자식분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쓰러진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간병하는 엄마를 잘 챙겨야 합니다. 엄마마져 쓰러지면 그것은 자식들 입장에서는 재앙입니다." 아무래도 집안의 어른이 쓰러지면, 남자들은 친구들과 즐겁게 술자리를 할 수도 없고, 여자들은 장보기도 어렵고 외부활동이 줄어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런 법칙에서 벗어나, 아내가 먼저, 집안에 어머니가 먼저 쓰러진 경우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는 분도 있지만, 남자라는 동물은 대걔 모성애가 없어 누구를 돌보고 간병을 잘 못합니다. 그리고 한국적 상황에서 밖에서 돈을 버는 데는 익숙해도, 당장 밥챙겨먹기나 간단한 집안일은 영 어린애 같이 하지요. 옛말에 "홀애미 삼년이면 쌀이 서말이고, 홀애비 삼년이면 이가 서말이다." 그 말이 틀리지가 않습니다. 이 경우에는 자식들의 입장에서는 돌봐야할 사람이 두명으로 늘어가는 것이지요.
한편 집안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이런 문제가 생기면 이제 부부중에 한 분이 아프신 것이니 주로 돌봐야 할 분이 없습니다. 그러면 간병인을 쓰게 되지요. 물론 이전의 경우에도 간병인을 쓰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가족이 전담으로 간병하지 않는 한, 간병인을 고용하게 됩니다. 간병인이 아무래도 가족이 아니다 보니 자식들 마음처럼 애틋하지가 않고, 또 자식들의 입장에서는 아픈 부모님을 모시고 있으니, 을의 관계가 성립이 됩니다.
결국 문제는 돈입니다. 환자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 병원비는 어떻게도 내겠는데, 간병비는 도져히 못내겠다.' 라는 생각이 당연히 듭니다. 보통 병원비 만큼이나 간병비가 나가기 때문에 뇌졸중 환자가 재활 치료 받는 동안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보호자들의 자식들도 대학을 들어가니, 학원비니 해서 돈이 나갈 때가 많아지지요.
한국 사회가 아무리 발전하고 지나가도,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유교적 질서가 남아 있는 사회이지요. 따라서 상대작으로 많은 책임이 장남에게 부담이 지워지죠. 여기서 갈등이 많이 발생합니다. 크게 장남과 아내와의 갈등, 그리고 시집간 시누이와 올케간의 갈등이 생깁니다. 우리나라 여자에게는 "시"자는 부담되는 말입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 시아주버님 등 가족이면서도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부모만큼이나 마음이 가지가 않지요. 같은 여자들인데 입장에 따라 달라집니다. 올케입장에서는 아픈 시어머니에 자주 오지도 않으면서, 큰 병원과 좋은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으면, "너네 부모가 아니라서 그러느냐?"라고 면박을 주기도 하고, 따라서 이런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다시 전가를 하지요. 그래서 이것들이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고, 형제들간에 갈등이 생깁니다.
제가 재활의학과 의사로 근무하면서, 가족간의 갈등이 있는 것을 수차례 목격을 했습니다. 가정사라 제가 개입하기는 그렇지만, 이런 일이 있으면 제가 가족 면담때 참석 가능한 가족들을 모두 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효자식이 두 경우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재산문제로 부모를 법정에 세우는 자식과 아픈 부모를 두고 싸우는 자식들입니다. 아픈 부모 입장에서 자기 때문에 자식들이 싸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그리고 한국사회가 여전히 장남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이기 때문에, 저는 가부장적 사회에 맞게 처방을 합니다.
"일단 장남이 가장 중간에서 힘드니, 그것을 가족들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경제적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병원비를 보테도록 하고, 주로 환자 분을 모시는 분은 이런 부담에서 좀 벗어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시집간 가족들은 환자분의 경과가 이러한 상태여서, 큰 병원에 입원을 여러번 하는 것 보다는 재활전문 병원이나 혹은 요양병원에서 장기간 입원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딸이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엄마가 뇌졸중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딸입장에서는 시집을 갔는데, 엄마를 돌보지 않는 남동생이 야속하기도 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원래 할머니가 되게 똑똑하신 분이셨는데, 홀로 시골에 사시다 연로하셔서 요양원에 모셨습니다. 근데 요양원에서 지속적인 학대를 당하셔서 우울증이 심해졌습니다. 나이든 분이 우울증이 생기면 증상이 치매와 비슷합니다. 근데 뇌졸중이 생기고 저희 병원에 입원을 하니, 학대를 받지 않으시니, 식사도 잘하시고 오히려 건강해지시고 좋아지셨습니다. 뇌졸중 온 부위가 작았거든요. 그래서 딸과 면담을 하면서 앞으로 모시는 문제에 대해서 상담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안에 형제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것 처럼,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는 것이 아픈 부모에게 잘하는 것이니, 서로 갈등하지 말고, 좀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이후로는 퇴원한 후 수원의 아들네 집 근처의 요양원으로 모신다고 했습니다.
한 1년 후인가요? 그 자식들이 다시 저에게 어머님 진료가 없는데도 방문 했습니다. 바쁜 외래 중이라,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 날 어머님 장례식 마치고 일부로 형제들이 저에게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어머니는 나중에 암이 발견되어, 그것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때 상담 덕택에 형제간 서로 이해를 하고 용서를 하는 시간을 가져 오히려 우애가 깊어졌다고 합니다.
뇌졸중이 걸린 부모님을 보면 한 편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 부담되기도 합니다. 심장병이나 암과 같이 고통이 동반되더라도 확실하게 하늘나라로 가면 좀 슬프고 시간 지나면 좋아질 텐데, 뇌졸중은 살아있어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지 않는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그 부담들이 자식들에게 그대로 남겨지지요.
그러나 한편,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자식이 받은 만큼 그대로 부모에게 돌려 줘야 하지요.
그러나 이런 갈등도 몇 십년 후면 사라질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점점 자식을 낳지 않거나 애가 없기 때문에, 우리 세대에서는 나이가 들면 어떻게 해야할지? 이것 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