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내가 세월에 흘려 보냈던 것들
2016년 3월부터 내년 3월까지 나는 꿈을 꾸고 있었고, 앞으로도 꿈을 꾸고 있을 것 같다.
나에게는 휴식이라는 것은 없었다. 내 등뒤에서 닥쳐오는 숨가쁘게 들이닥치는 운명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고, 나는 억울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그리고, 나에게 닥쳐진 2등은 나의 최대의 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의 시선 혹은 1등에 대한 갈망으로 나를 다그치면서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
내가 미국에서 버린 것은 억울하다는 생각이었다.
1996년 이후로 나는 제대로 쉴 수 있는 집이 없었다. 동기들은 부모들이 해 주는 밥과 돈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는 그 때 입주과외를 하고 그 추운 겨울에 이불하나 덥고, 산업보건연구회에서 겨울을 나면서 언제 이 고통이 끝이 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특히 괴로웠을 때는 명절 때였다. 대구는 명절에 식당을 하는 곳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명절때는 굶기쉬웠고, 언제가 설때는 연휴 3일동안 굶은 적도 있었다.(아니다 그 때 3일 내내 술과 담배를 피웠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러나 내가 만난 미국 상당수 의대생들이나 의대를 준비하고 있는 Vanessa 같은 이들은, 고등학교까지는 부모의 도움을 받았으나, 대학을 다니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이 학비를 만들거나, 아니면 학비대출을 통해서 자기 스스로 상당수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워낙 넓고, 조금 머리가 좋은 이들은 명문대에 진학하기 때문에 고향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원을 가야하기 때문에 또 학부에 다니는 대학을 떠나게 된다. 이들은 혼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독립심이 길러지고, 또 혼자서 밥을 먹어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여기서 많은 미국인들이 컴터 앞에서 점심도, 저녁도 혼자서 먹으며, 일을 한다. 혼자 밥먹는 것이 억울한 일이 아닌 것이다.
원래 인생이라는 것은 나의 모토인 것처럼 "내 인새의 주인은 나"이지만, 나는 이것이 하나의 이상의 표상이었지, 진정 내 삶의 주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앞에 있는 운명과 내가 가야할 것이, 비록 편한 길이 아니고 어려웠고, 힘들었지만, 그리고 그것을 다 이겨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인생이고 그것이 나이기 때문에, 나는 내 스스로를 인정하고, 위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주어진 휴식 1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는 지금도, 앞으로도 늘 마음에 두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