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棟/일기

제보자

Re-Happy-Doc 2014. 10. 5. 21:48

영화 제보자를 보았다. 실제 제보자의 주인공이 나랑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감회가 새로웠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진시황의 불로장생 신화를 믿는 것 같다. 인생이라는 것이 병이 없고 죽음이 없다면 과연 인생이겠는가? 물론 병에 대해서 치열하게 싸우는 인류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런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고, 오히려 그런 것에 대해 헌신적인 의학자들에게는 존경을 표한다. 그러나 그 의학자들도 모두 병에 걸려 죽게 된다. 잘 살펴보면, 인간 수명의 연장에 대해서 의학이 미친 영향이 물론 크지만, 그 이외에 다른 요소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위생의 개념과 영양 공급의 증가로 인한 면역력의 증가가 그 원인으로 제시될 수 있다. 요즘에는 면역력의 증가때문에 자가면역질환이나 알레르기와 같은 면역체계 이상 질환이 급증하는 것으로 볼 때 어느 것이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문제는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제보자의 진실에 대한 열망과 그리고 진실을 알리려는 PD들의 노력에 앞서, 과연 이런 황우석박사의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에게 낯선 모습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거시 권력이 바뀌면 삶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이다. 지금 집권당이 잡고 난 뒤에 공직은 다 그 지역 사람이다. 그 지역 사람들이 미시 권력을 잡으려면 거시 권력에 대해여 목숨걸고 공격하거나 방어한다. 국익이고 진실이고, 사회발전이고 대한민국의 수년 뒤 청사진을 알려주고 할 것 말고,내가 작은 자리의 장을 잡고, 내 새끼 밥 먹여가며 살아가는 당장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이 힘들, 이 욕망은 반대로 크게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여전히 49%는 미시권력에 소외되어 있고 51%는 여전히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현상 유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학계에 있는 미시 권력에 대한 이야기 이다. 나는 이영화에서 기시감(Deja vu)를 느꼈다.  선의로 가장된 학계 내의 수직질서가 낯선 모습이 아니고 아주 오래된 익숙한 일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학계내에서 교수는 여전히 갑이고, 자기가 스승이라면서도 아랫사람에게 디딤돌이라기 보다는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자기 존재를 위해 요구 조건을 관철시키고 복종을요구하는 학계 내의 폭력을 나는 보아왔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 또한 그런 질서에 편입되고 있고 서서히 그들과 일체가 되어감을 느끼고 있다. 


나는 재활의학을 하면서, 재활의학을 하면 장애인에 대해서 도와줄 수 있는 과라고 생각해서 지원을 했고 지금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되었다.그러나 이는 나의 주관적 착각이었나 보다. 물론 타과 보다는 장애인에 대해서 도와 줄 수 있는 과이다. 그러나 칼은 가치 중립적이다. 칼이 의사에게 놓여지면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이 되지만, 도적이나 강도에게는 살인검이 되는 것처럼, 학문 또한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는 가에 대해서 달라지기 마련이다. 나는 재활의학이라는 학문이 장애인에 대한 사랑보다는 장애인을 위한답시고, 그들을 이용하거나 자신의 영달을 위해, 혹은 business의 대상으로, 이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쨋든, 국가의 지도층 인물들이 개입된 거대한 사기극에서, 내가 알고 있는 제보자가 말하지 않고 소시민처럼 살아갔더라면 어땟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한 편으로 황우석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급격한 변화를 격게 되엇지만, 현재는 이 사회의 한 구석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제보자를 보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든 그 분에게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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