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棟/내가 좋아하는 책들

“人生到處有上手”-“ 인생을 살다 보면 항상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Re-Happy-Doc 2011. 9. 15. 22:22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 6권을 읽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4학번이다.

대학에 입학하자 마자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신세대혹은 “X-세대라는 이름을 언론에서 하사 받았다. 대학 캠퍼스는 보기엔 자유로웠지만 나는 무엇과 단절된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장수를 잃은 패잔병처럼 의욕을 잃고 광장에서 사분 오열 하나씩 도서관에 들어가고, 대학에 오면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기대 이하 현실에 좌절했던 것 같았다. 자연대 의예과방에서 이전 선배들이 열심히 보았던 사회과학책들은 먼지가 수북히 싸여 있거나 혹은 쓰레기통에 도매급으로 처분되는 것을 목격했었고 동아리 방에서는 조직 사건의 필사본들이 증거 인멸을 위해 소각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과방에는 여전히 운동 노래책이 있었고, “사회평론-이 관성으로 남겨져 있었다.

 

당시 진보적 시사 종합지 사회평론-에 연재되던 유홍준이 연재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이전에 단호하고 무미건조한, 사구체 논쟁의 날카로운 운동권 전용 용어에서 벗어난, 신선한 충격이었다. 답사기의 파장은, 당시 우리가 지칭하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문화유적답사의 열풍을 몰고 왔으며, 학생회 근처에 머뭇거리던 얼치기 자칭 혁명가들뿐만 아니라, 박노해와 같은 진짜 혁명가 조차도 경주 교도소 자기 독방을 감은암(感恩蓭)이라고 부르며 유홍준의 열렬 지지자가 되었다.

 

가라앉은 막걸리처럼 걸쭉한, 톡톡 상큼 발랄, 리드미컬하고 다이내믹한 형용사와 부사, 때에 따라서는 단도(短刀)가 푹 들어가는 직접화법의 문체는 그 시절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처음이었다. 그의 답사기는 유산에 다가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주변의 계절의 풍광, 유산 근처의 사람들, 사연 이야기 그리고 그가 유산을 통해 투영된 자기의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는 현역에서 은퇴하여 본래 기능을 상실한 유산들에 대해 오늘 새롭게 다가 오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도 나이가 들었고 나도 나이가 들었다. 이제 그는 어느덧 은퇴를 앞두고 있고, 나는 대학생, 수련의를 거쳐 이제서야 내 이름 석자를 쓰는 가파른 인생길의 시작이다. 남도부터 시작한 그의 글은 경북 내륙을 지나 강원도를 거쳐 북한의 문화유산이야기와 금강산 절경에 대한 묘사를 통해 남북을 아울렀고, 이제는 500백년 도읍과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심장인 서울에서 그의 생각이 머문다. 

6人生到處有上手에서는 경복궁, 광화문, 경회루, 향원정 서울사람에게 친숙한 유산에 대해서 그의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가 문화 유산을 답사하면서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대해서 남다른 탁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환갑이 지난 나이에 돌이켜 보면서 인생 여기저기에서는 나보다 뛰어난 인간이 있음을 고백하는 겸손의 미덕을 가지게 된다.

 

   인생을 살다 보면 항상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인생은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그 시대의 사람도 지금의 사람도, 늘 그러했었다. 그 시대에서도 전복을 꾀하는 반역의 무리들이 있었고, 남녀간의 사랑이 있었고 형제들간의 우애가 있었다. 지금의 사람들이 천국에 가서 만수무강하게 영원토록 사는 것을 원하는 것처럼 그들도 복덕을 쌓아 내세에 좋은 집안으로 태어나기를 원하였으며, 집권자들은 자기의 통치가 굳건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반성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가 하면, 반면으로 폭정으로 백성들을 괴롭히기도 하였다.

그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생각이 투영된 문화 유산을 통해 그들의 생각이 지금의 우리보다 上手임을 깨닫게 한다.

 

 

이 존엄한 공간의 건물을 정도전은 근정전이라 이름지었다. “태조실록” 4 10 7일자에 실린 정도전의 근정전 기문(記問)을 보면 옛사람들이 인문정신을 고양하는 노력이 얼마나 높은 차원이었나를 실감하게 된다. 정도전은 근정의 뜻을 이렇게 풀이했다.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폐()하게 됨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이렇게 서두를 꺼낸 정도전은 이어 서경(書經)의 말을 이끌어 부지런함의 미덕을 강조하고, 또 그 역사적 사례들을 제시했다. 이는 자기 글의 논리와 권위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왕도 거역할 수 없는 사항임을 은근히 강조한 것이다. 그렇게 확실한 근거를 정한 다음 정도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간다. 이것이 왕에게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다.

 

그러나 임금으로서 오직 부지런해야 하는 것만 알고 부지런해야 하는 바를 모르면 그 부지런하다는 것이 오히려 번거롭고 까탈스러움에 흘러 보잘것없는 것이 됩니다.”

 

이 점은 예나 지금이나 통치자가 범하는 가장 큰 과실의 근원(根源)이다. 이는 대통령부터 회사 사장, 가정의 가장까지 새겨들을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정도전은 옛 현인의 자세를 이끌어 이렇게 충고했다.

 

아침엔 정무를 보고(聽政), 낮에는 사람을 만나고(訪問), 저녁에는 지시할 사항을 다듬고(修令), 에는 몸을 편안히하여야(安身)하나니 이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입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쉴 때는 편히 쉬는 것이 부지런함에 해당한다는 것 아닌가! 그런 인생의 여백을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도전은 확실히 상수 중의 상수였다. 그리고 정도전은 임금을 향해 진짜 부지런 해야 할 사항 하나를 강조하면서 글을 끝맺는다.

 

부디 어진 이를 찾는데 부지런하시고, 어진 이를 쓰는 것은 빨리 하십시오.”

 

통치자가 기거하며 정사를 돌보는 곳을 청와대라고 하는 것과 근정전이라고 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반복해 읽어보아도 근정전의 뜻은 참으로 깊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로 벌써 서울에 올라온 지 12년이 되었다. 내인생의 1/3을 벌써 고향을 떠나 외지에 보낸 것이다. 내가 고향에 내려가 정착하지 않는 한, 앞으로 이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릴 것 같다. 물론 내 고향과 지방을 폄하할 의도는 없지만, 서울 근처에 살면서 수많은 上手를 만나게 되었다. 한 때는 내가 왜 저렇게 않될까? 좌절도 많이 했었지만 안되고 아쉬움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고 겸손을 배우게 된다.

 

최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 전질 6권을 다시 사서 구해서 읽게 되었다. 이전 대학시절 읽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나기도 하고, 이전 초판과 달리 추가된 내용도 있어서 마치 내가 대구고향집에서 먹는 고등어 자반과 김치찌개처럼 읽는 맛이 그윽하다. 이제 그의 답사기도 나도 나이가 들었으며, 신선한 충격에서 고전으로 내 서재에서 자리잡고 있다.  

 

'病棟 > 내가 좋아하는 책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  (0) 2013.04.03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  (0) 2013.04.02
자전거 여행  (0) 2011.09.15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0) 2008.09.19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0) 2008.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