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의학을 하다보면, 이래 저래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사실 목숨이야 급성기인 응급의학과나 신경과, 신경외과 선생님들이 살려 놓은 것인데, 그 때는 환자나 가족 모두가 경황이 없다보니, 마지막으로 보는 재활의학과 의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재활의학과는 좋아질 일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다. 그러나 재활의학과에도 절망적인 병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루게릭 병"이다.
21세기가 된 지금도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이 바로 "루게릭 병"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화수분"이나 "운수 좋은 날" 이라고 해야하나? 아이러니, 베이브 루스와 동시대의 야구선수로 뉴욕양키스에 있으면서 최다 출전한 "강철 사나이"인 내야수 "루게릭"이 가졌던 병이라고 해서 명명된 질환이다.
이 병은 서서히 근력의 저하가 생기면서, 힘이 빠지는데, 처음에는 경추나 요추의 신경근병증과 감별이 어렵다. 그러다 수술을 하더라도 호전이 되지 않고 팔다리의 근력이 점점빠지고 나중에는 얼굴, 목, 호흡근까지 마비가 와 사망을 하게 되는 병이다. 요즘에는 호흡기를 써서 호흡근을 대신하지만, 의식은 또렷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기 몸에 갇히게 되는 병이다.
사내는 50대 초반이었다. 하루는 왼쪽 어깨가 수술을 했는 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내원하였다. 그는 타 병원에서 왼쪽 어깨 마비로 경추신경근병증을 의심하여 수술까지 진행하였으나 큰 호전이 없었다. MRI에서도 경추 5번 신경이 압박하고 있어 그 병원에서도 루게릭을 의심하여 신경과에 협진을 보았으나, 초기에는 감별이 어려워 루게릭일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하여 수술을 했던 환자였다.
나도 처음에 볼 때는 경추 신경병증이 의심이 되었다. 그리고서는 점차 좋아질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고 위로하였다. 약을 주고 시간을 지켜 보자고 하였으나 환자는 왼쪽 어깨뿐만 아니라 오른쪽 어깨도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내가 다시 근전도를 하니, 루게릭 병이 의심되는 소견이 보였다.
"루게릭이라, 루게릭이라..... 내가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그 때만 해도 전문의가 된지가 얼마 되지 않아,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나라 최고 대학병원 중에 하나인 병원에 보내서 확인을 하려고 하여 그 쪽에서 진단을 받도록 하였다.
그러나 환자는 수 주후에 내원하면서 다시 나에게 내원하였다.
"선생님. 여기 했던 검사 모든 것을 다시 하였는데, 그 의사가 뚜렸한 말을 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1년 뒤에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해요. 기분나쁘게 말을 해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
그러면서 나에게 검사한 결과와 의무기록지를 다시 보여주었다.
의무기록지에는 " 타 병원에서 루게릭병이 의심된다고 보내준 환자임.......본원에서 시행한 근전도 검사 및 타 검사 종합 결과...... 루게릭병이 의심됨"
그 병원에 의료진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한 것 같았다. 어쩌나 고민하다, 내가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환자분, 저랑 소주 한 잔 하시죠. 나중에 술마시면서 이야기를 합시다."
그리고는 나는 먼저 집으로 전화해서 아내랑 통화를 했다.
"남편분이 아마 루게릭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야기를 하면 남편분이 상심이 클 것 같습니다. 언제 하루 날 잡아서 3명이서 같이 이야기를 합시다."
아내랑 이야기를 많이했다. 남편은 사업을 하다 여러번 실패를 해서, 최근에 몸과 마음이 많이 망가졌다고 했다. 그리고는 최근에는 몸도 좋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또 술만 마시면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소리를 많이해서 아이들과도 사이가 소원하다고 했다. 생활이 되지 않아서 아내가 최근에는 피부미용사로 피부관리실에 다니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면서, 남편에게 신경을 많이 못쓰고 있다고 하였다."
사내와 그 사내의 아내, 나 이렇게 세 명이서 횟집에서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긴장을 풀고, 소주를 마시면서 약간 취기가 돌았다. 나는 용기를 내었다.
" 환자분, 환자분은 루게릭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
사내는 그 말을 듣자 경직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서는 담배를 한 개비 물고는
"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제까지 제 고민이 해결되었습니다. 제 병을 용기있게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
겉으로는 나는 웃었지만, 나도 곧 그의 마음이 되었다. 하루 하루 살면서 하루 하루 죽어가는 것이 보통 인생인데, 그는 말 그대로 하루하루 죽어가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선생님. 저 담배 피워도 되지요? 언젠가는 죽겠지만, 그래도 담배는 피우고 싶습니다. "
"그래요. 같이 한 대 피웁시다. 하루 하루 금쪽 같은 시간이니, 오늘 즐겁게 마시고 보냅시다. "
그 때는 내가 결혼하지 않았을 때였다. 그리고는
"제가 결혼하면, 꼭 오십시요. 제가 결혼할 때까지 꼭 살아주셔서 저 결혼식에 오세요. 약속합시다."
한 달에 한 번씩, 그 사내는 그 모든 힘을 짜내어 외래로 내원하였다. 죽음을 앞두고 보통은 가족들과 화해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여전히 죽음의 공포에 있었고, 그 사내가 오기가 어려우면 가족들이 내원해서 약을 받아갔다. 그러나 자식들은 아버지의 증세에 시큰둥 하는 듯 했고, 내가 왜 그러냐고 하니, 아내는 아버지가 몸이 힘들어 술을 마시지 않으니 오히려 술주정을 하지 않아 병에 걸린 아버지를 반기는 듯 하다고 하였다.
점점 병이 진행되자 그는 숨을 쉬기도 힘들었고, 발음도 어눌했고, 먹지도 못해서 기력이 떨어졌다.
내가 결혼하던 날, 그는 나의 약속을 지켰다. 그가 살고 있는 파주에서 결혼식장이었던 서울 서초구 법원까지 온다고 힘든 표정이 역력했지만, 그는 모든 표정을 삼키면서 나에게 축하한다고 웃음을 건냈다. 그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는 그를 찾았지만, 그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결혼을 하고 5개월이 지나서였나? 새벽에 전공의로 부터 연락이 왔다. 선생님 환자 한명이 호흡곤란으로 응급실로 내원하여 산소 포화도가 떨어져 기도 삽관을 하려고 하였으나, 입을 다물고 끝까지 거부해 결국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영정에 있는 그는 참한 청년이었다. 그 무수한 삶의 무게를 던진 것 처럼, 죽어서야 청춘이 되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아내가 진단서 문제로 찾아왔다. 이제 남편과 인연이 끝났으니, 그녀와도 인연이 끝을 맺게 되었다.
" 선생님. 이래저래 신경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남편도 마지막까지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편안히 잘 가셨어요. 고맙습니다."
벌써 5년의 시간이 흘렀다.언젠가 나도 그의 곁에 갈것이지만, 살아보니, 산다는 것이 죽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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