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棟/내가 만났던 환자와 가족들

총장 할매

Re-Happy-Doc 2015. 3. 14. 19:41

뇌졸중은 만의 얼굴을 가진다고 한다. 다친 부위에 따라서 증상이 아주 다양하다. 가령 뇌부위중 말하는 데를 다치면, 말을 못하고, 팔을 쓰는데 다치면 팔을 못쓰고, 말하는 곳에 다치면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뇌졸중은 환자마다 증상이 다르고 예후도 다르다. 


보통 예후는 나이와 많은 관련이 있다. 젊은 사람은 보통 예후가 좋은데 비하여 같은 부위가 다치더라도, 나이가 든 사람은 예후가 좀 좋지가 못하다. 인지기능도 그러한 데, 많이 다칠 수록 인지기능이 떨어저 치매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람 사는 데에는 항상 예외가 있듯이, 뇌혈류를 공급하는 큰 중뇌동맥이 막혀 뇌가 크게 다쳐도, 인지 기능이 좋은 사람도 있다. 이제까지 뇌가 크게 다쳐도 이렇게 인지기능이 좋은 사람을 딱 두명의 환자만 보았는데,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총장 할매가 두명의 환자 중 내가 처음 만난 경이로운 할머니였다. 


5년전 총장 할매는 심부정맥으로 인해서 우측 중뇌동맥이 크게 막혀, 우측 뇌 전체가 망가졌다. 이럴 경우는 뇌가 붓기 때문에 신경외과에서 얼른 머리뼈를 도려낸다. 그래야 숨뇌가 막히지 않아서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처음 본 할머니는 오른쪽 뇌가 없는 상태에서 보았으나, 나중에 복원 수술을 한 후에, 인지 기능이  너무나도 똑똑하게 말씀을 하는 할머니였다.


한 번은 회진 돌다가 할머니가 이렇게 자랑을 하시는 것이었다. 


" 우리 아들도 교수, 딸도 교수, 사위도 교수 우리집안 전체는 교수가 많아요." 아직도 기억난다. 약간은 어눌했지만, 분명하게 자기에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보고 


"아이고, 우리 할매, 아들도 교수, 딸도 교수, 사위도 교수면 할매가 대학하나 만들어 가지고 총장하면 되겠다. 우리 할매는 총장 할매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환자를 보고 총장 할매라고 불렀다. 


인상이 깊었던 것은 어느 환자나 가족도 그러겠지만, 가족들이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보통 환자가 인지기능이 좋더라도, 뇌의 손상이 심하면 거의 모든 일상생활동작수행이 타인에 이루어지게 된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나는 이렇게 설득한다. 


"어머니가 당신 때문에 자식들이 힘들다고 하면, 얼마나 가슴아프시겠습니가? 부모의 마음은 자식이 잘되는 것입니다. 자기 일 열심히 하시고, 자주 어머니를 찾아 뵙는 것이 더 큰 효도가 될 수 있습니다. 크고 좋은 병원을 다니는 것이, 보기에는 그럴싸하게 보여도, 오히려 어머니를 고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방향으로 하세요."


대부분 이렇게 설득하면 가족들도 수긍을 한다. 그러면 나중에는 요양병원에 입원해서, 가족들이 약을 타거나 간병인들이 약을 받아가게 되면서 인연을 이어나가게 된다. 


" 긴 병의 효자 없다."


재활의학과 의사로 가족을 바라보면, 이 말은 지극히 합당하고, 지당하고, 인간적인 말이다. 어떻게 인간이 모든 시련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뇌혈관 기형으로 뇌출혈이 여러번 발생하여 식물인간이 된 여자 환자분이었는데, 이럴 경우에는 보통 대형병원 재활의학과 보다는 재활전문병원이나 요양병원을 권해드린다. 왜냐하면 대학병원급은 아무래도 검사를 많이하게 되고, 치료비도 비싸다. 그렇다 하더라도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가족의 입장에서는 실낫같은 희망을 들고 여기 저기 병원에 전전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은 절망으로 변하게 된다. 서서히 일상의 무게와  경제적인 문제로 가족들이 점점 지쳐 나가 떨어져, 종국에는 버림받은 환자들의 마지막 모습이 안타까운 것을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요양병원으로 모시라고 설명하자 


" 당신이 뭔데, 그렇게 자신있게 엄마가 나빠진다고 하냐? 당신 말에 책임 질 수 있어?"


그러자 내가 답변했다. " 책임질 수 없지요. 그러나 당신이 수년이 흘러도 지치지 않는다면 제가 한 말에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말하는 아들은 조용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상에는 항상 예외가 있는 법, 긴 병에 효자가 없지만, 효녀는 있다. 효녀 심청.....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기 몸을 바치는 심청. 누군가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누군가가 내 안에 들어와서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 그 어머니의 상황이 그녀에게 들어가 그녀를 바꾸게 한 것 같았다. 할머니는 한 달에 한번씩 휠체어를 타고 간병인과 딸이 함께 외래내원하였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간병인이 혼자와서 약만 타가는 것이 보통인데   딸은 5년전 처음 뵈었을 때나 지금이나 늘 한결같이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는 내가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그 미묘한 엄마의 변화를 말씀을 주시고는 해결책을 묻곤 했다. 


나는 그 딸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딸은  이름있는 회사에 임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나중에 선물을 주시면서 동봉된 편지를 보고 알게되었다. 


"......... 선생님이 총장 할매라고 부르는 OOO 환자가 제 오마니입니다........." 


보통 큰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고, 거기에 합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딸은 절대로 그런 부담되는 말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겸손했다. 


세월을 견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변하는 것이 세상의 본질이며, 시간의 함수에 따라 촛농이 떨어지 듯이, 그렇게 목소리가 우렁차던 총장 할매도 점점 기력이 쇠해지고 식사량도 줄어 들었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조금씩 조금씩 총장 할매의 몸이 사그러 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올해 초, 총장 할매가 잘 먹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내과 진료 후 딸로 부터 할머니가 위중하다는 연락이 왔었다. 출근하자 마자 응급실로 내려가니, 할머니가 더운 여름 열기에 갑갑해 하는 어항안의 금붕어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2주 후 나에게 입원한  할머니는 남편과 가족, 효녀, 그리고 내 곁을 떠나 보내고 갔었다. 그리고 5년간 총장 할매와 그를 돌보던 효녀의 이야기도 끝을 맺었다. 


최근에 이런 저런 일로 딸과 통화를 하게되었다. 딸은 그간 5년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말씀을 주셨다.  


" 5년간, 제가 오히려 많이 배웠습니다. 제가 환자를 보는지, 아니면 두분께서 저를 보시는지, 제가 의사랍시고 이렇게 저렇게 못된 말도 많이 하곤 했었는데,  그래도 저를 믿고 오셔서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