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棟/일기

서재필이 약 100년 전에 한 말입니다.

Re-Happy-Doc 2016. 12. 24. 00:34

"We can disagree with others without being discourteous and we can be charitable without compromising the principle we hold sacred." 


강사범이 서재필의 전기를 읽고 난 뒤, 감동받았다면서 내게 보낸 이멜중에 있던 말이다. 


백년전 서재필이 미국으로 망명을 와서, 미국 생활하면서 느낀 점이나, 내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이 동일하다. 


갑신정변을 일으키는 바람에 역적으로 몰려,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여, 거기서 여러 지인을 도움을 받고,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의사가 된 서재필- 나의 뜻이 다르면 죽일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의 엄혹한 현실과, 타인에 대해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돕는 미국인을 보면서 이런 말을 한 게 아닌 가 생각한다. 


한 때, 나는 나의 생각만이 옳고 그것만을 지키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어제의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듯이, 어제의 내 생각은 지금의 내 생각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 개진을 많이 했다고 생각을 한다. 


금강경에서 "무주상보시"는  어떠한 목표나 생각을 가지지 않고 그 마음을 내어 남을 돕는 것을 일컷는 말이다. 무소유, 그러나 내가 본 한국 불교는 이런 무주상보시나 무소유가 신도가 절에 당연히 시주해야 한다고 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 같다. 사람 사는데 모두 그렇겠지만, 인간은 죽으면 보편적으로 자기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준다. 그러나 상당수의 많은 미국 부자는 죽기전에 학교나 병원, 사회에 많은 기부를 한다. 이들이 석가의 말을 알고 있던 모르고 있던 간에 그들은 이미 무주상보시와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착각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동양은 정신적이고, 서양은 물질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그러나 한국의 부자들이 하는 것은 그들이 설사 종교인이라 하더라도 하는 짓은 지옥에 가기 딱 알맞는 일만골라서 하고 있으며, 한국의 일부 기독교인들이 한국보다 기독교의 본 고장인 유럽이나 미국에서 교회 참석율이 떨어진다고 걱정하는데, 교회를 다니는 신자으로 기독교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운영 방식이 기독교적이라야 기독교 사회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대형 교회 목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한국은 기독교 보다는 무속신앙이나, 유교적 방식과 더욱 비슷하다. 


남을 돕는데는 도와야한다는 당위성이 꼭 필요하지가 않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이 동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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